♣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 스타인의 분쟁의 원인과 ㅡㅡ 그 진실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슬로 협정
가장 핵심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말씀으로 여기 가장 잘 풀어놓고 있는 영상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여기 팔레스타인 땅의 진짜 주인은..?
팔레스틴과 이스라엘 전쟁을 보면서 여기저기 말들이 난무하고 믿고 신뢰했던 분들마저 은근히 반 유대주의에 물들어서 공정한 판단보다 한쪽으로 치우치고 감정적인 풀이로 인해 또 한쪽에서 사상, 이념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극렬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왕국은 인간의 타락성에 기반한 감정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정하고 의로우신 말씀에 입각해 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고 분노를 표출하며 비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세대가 악한 세대가 아닐까요,.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과 그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것에 대해 상고해 보고 겸손히 주님의 뜻을 묻고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 주님의 음성이 무엇인지 깊이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역사는 돌고 돕니다. 우리가 이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실수는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듯이 이스라엘 팔레스틴 전쟁을 보면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https://youtu.be/G9jlmyRHqIM?si=2IhbKlLTIJtbcaxH
링크 ↑↑누르세요
먼 옛날 가나안이라는 땅
현재 이스라엘 땅이라는 고대명칭은 가나안이었습니다. 약 4천 년 전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정착해서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형성합니다.
참고로 아브라함은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통 조상입니다. 어쨌든 가나안에 큰 기근이 닥치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기근을 피해서 이집트 나일강 하류로 이주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노예로 전락한 유대인들이 약 400년간 강제 노동에 시달렸고 결국 모세가 민족을 해방시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됩니다.
BC1000~~ 왕국시대
40년간 광야에서 방랑하는 시간을 거처 그들은 진정한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고 십계명을 비롯한 토라를 받게 되었는데요. 토라는 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으로 가장 중요한 문서입니다. 그 후 2세기 동안 유대민족은 이스라엘 땅 대부분을 정복하게 됩니다.
기원전 1020년경,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은 그들을 괴롭히던 민족 블레셋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에 나섰고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왕은 팔레스타인을 제패하면서 이스라엘을 강대국에 올려 놓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 12 지파를 하나로 통합하고 수도 예루살렘과 군주제가 국민들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데요,. 기원전 965년경 그의 후계자가 된 솔로몬은 여러 업적을 남기는데 특히 그의 탁월한 업적 중 하나는 기원 957년 고대 유대교의 중심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교의 원천이 되고 훗날 기독교도에겐 예수님이 부활한 성지가 되며 더 훗날엔 모하메드가 승천한 신을 만나는 성지가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적으로 엄청난 민감한 지역이 됩니다
어쨌든 예루살렘에 제일 먼저 성전을 세운 건 유대인이었습니다.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이 죽자 나라는 왕권이 분열되면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으로 갈라집니다.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은 북 이스라엘 왕국은 200년 이상 지속되었고 예루살렘 중심의 유다 왕국은 400년간 통치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원전 722년 북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함락되고 100여 년 후인 남 유다는 기원전 BC,586년에 바빌로니아의 느브갓네살에게 유다왕국이 점령당하면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대부분의 거주민들을 내쫓아버립니다.
바빌로니아 왕은 유다 왕국의 백성들을 본국으로 끌고 가서 유대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는데 사실상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유다 사람들이라는 뜻의 유대인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BC586~~,페르시아시대
기원전 538년경 바빌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정책으로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은 1차 포로귀환이 되는데요. 이들을 이끈 사람은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세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율법학자인 에스라의 주도로 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집니다. 이후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제2 성전을 건축하면서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합니다.
BC332년경~~ 헬라시대
기원전 332년경 세계정복을 꿈꾸는 정복 대왕 알렉산더가 등장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반도의 도시국가로 구성된 헬라지역을 통치했고 이스라엘 역시 알렉산더가 정복한 고대통치의 일부로 편입되는데요. 이로서 유다인들은 알렉산더 휘하의 셀류쿠스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유대민족은 헬라문화나 관습을 흡수하기 싫어했고 더욱이 유대교 행사 금지령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166년경 화가 난 유대인들이 혁명을 일으키는데요.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이 스스로 세운 하스몬 왕조의 주도하에 승리를 이루자 셀류쿠스 왕조는 결국 유대인에게 유대의 자치권을 되돌려 줍니다.
기원전 129년 결국 셀류쿠스 왕국이 몰락하면서 유대인들은 다시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그 후 유대인들은 하스몬 왕조의 통치하에서 약 80년 동안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리기도 합니다,.
BC63년~~ 로마시대
하지만 기원전 63년 이스라엘 땅은 로마 제국에 잡아 먹히는데요. 하스몬 왕조의 왕인 요한 힐카누스 2세에게는 로마의 지배하에 제한적인 왕권만 주었고 새로운 정권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수많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결국 로마군에게 패배하고면서 하스몬 왕조는 막을 내리고 그 땅은 로마 제국에 통치를 받게 됩니다. 기원전 37년 로마가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했고 내정에 대해 거의 제한 없는 자치권을 주면서 이제 헤롯은 로마제국 동부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중에 하나가 됩니다. 헤롯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열렬한 신봉자였기 때문에 대규모 건축 사업에 착수해서 마사다 요새등을 세우게 됩니다. 또한 그는 성전을 그 시대의 가장 웅장한 건축물로 증축하게 됩니다.
헤롯은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 시대에 유대 민족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그 후 유대는 로마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습니다. 유대인들만의 생활양식에 대해 로마의 탄압이 심해지자 분노한 유대인들은 점차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전투력에서 우세한 로마군이 결국 승리를 일으키게 되고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헤롯 성전이 무너져 내립니다.
예루살렘 헤롯 성전에 남은 서쪽벽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예루살렘 함락은 바로 커다란 결과를 초래했는데요. 이때부터 기독교는 유대교와 서서히 갈라지게 됩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진 채로 유대 문화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디아스포라"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나라는 지도상에서 2천 년 동안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데요. 나라를 상실한 유대인들은 2천 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이방인으로 떠돌며 온갖 차별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 와중에도 유대민족과 그 정신은 그 종교법인 할라카에 의에 하나로 결속됩니다.
324~ 비잔틴 시대
이후 4세기 말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비잔틴 제국이 세워지면서 기독교 중심 국가가 세워집니다.
636년~ 초기 아랍시대
더 시간이 흘러 636년 무하마드가 사망한 지 4년이 흘러 아랍이 이스라엘 땅을 정복하는데요. 아랍왕조의 지배는 약 4세기가 넘게 지배되었고 다양한 칼리프(이슬람 제국 주권자의 칭호) 들이 이 지역을 통치합니다. 그 사이 예루살렘은 메카(학문, 예술 등의 특정 분야의 중심지로서 사람들에게 숭배받는 곳 )와 메디나(도시라는 뜻으로 이슬람의 성지)에 버금가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비 이슬람교에 대한 차별이 심해지면서 아예 고국를 떠나는 유대인들이 늘어납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고국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동안 예루살렘은 긴 시간 이슬람의 땅으로서 무슬림에게 추앙받게 됩니다.
11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200년의 기간에는 십자군 세력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도 했는데요. 로마의 교황이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의 손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유렵 기독교 국가들이 모인 제1차 십자군이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곳에 살던 유대인들을 비롯해서 대부분 학살해 버립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대부분 불에 타 죽거나 노예로 끌려갑니다. 이후 13세기까지 이어진 십자군 원정은 결국 이슬람군에 최종적으로 실패하면서 끝났으나 이 원정으로 유렵에서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열렸고 성지순례가 일반화되었으며 많은 유대인들은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1291년부터 이스라엘은 다시 이슬람교도 즉 무슬림의 지배아래 들어가는데요. 무슬림 노예군대인 맘루크 왕조는 십자군이 세운 교회를 파괴하고 이슬람 사원과 학교를 세우며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켜 갑니다. 1517년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시작되는데요. 오스만 제국 역시 이슬람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성지 예루살렘을 가장 오랫동안 지배한 종교는 이슬람교인 셈입니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중세시대는 점차 막을 내리고 서양 열강에 의해서 이스라엘 땅은 대륙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이 됩니다.
1870년대에 이르러서는 예루살렘 인구의 과반수가 유대인으로 채워질 만큼 유대인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히브리어도 부활합니다.
그리고 시온주의 운동이 시작될 발판이 마련됩니다. 시온주의 란 유대인들의 민족해방 운동인데요. 예부터 이스라엘 땅과 예루살렘을 동의어로 사용된 시온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소수민족으로서 늘 공동체의 주변에만 머물러 있었고 너무도 쉽게 집단 증오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렵에서 흑사병이 발병했을 때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집어넣었다는 소문으로 희생당하는가 하면 십자군 전쟁에서는 유대인 학살이 수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종교 문화 경제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중세 유렵에 반 유대주의 정서가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유렵인들은 유대인들을 경멸했으며 유대인 들은 사화적 차별에 환멸을 느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땅을 향한 유대인들의 애착은 유대인들의 조상의 땅을 되찾는다는 시온주의 사상으로 이어집니다.
1917년~ 영국 식민지 시대
제1차 세계대전의 실패로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자. 1917년 승전국 중 하나인 영국이 팔레 스타인을 위임 통치하게 되는데요. 영국은 불과 2년 전 팔레스타인에 사는 아랍인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팔레스타인 독립을 보장한다고 약속해 놓고서는 유대인들에게 상충된 선언을 해 버리는데요. 유대인 너희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벨푸어 선언으로 아랍인들은 뒤통수를 맞았고 유대인들 시온주의에 기름을 붓게 됩니다. 결국 벨푸어 선언이 이스라엘 건국에 촉매 역할을 하면서 현재 팔레스타인 분쟁에 큰 역할을 한셈이죠.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지한다는 영국의 표명으로 이스라엘으로 들어오는 이주민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고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부흥하고 국가를 재건하려는 노력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아랍인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시온주의와 아랍 민족주의는 양극으로 치달으며 거의 폭발직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전쟁 중 나치 정권은 유렵의 유대인 공동체를 말살하려는 계획, 곧 홀로코스트를 치밀하게 수행..??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히틀러는 600만이라는 유대인을 학살했고 이로 인해 시오니즘은 급격하게 발전합니다. 영국은 두 민족의 대립을 중재해 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다가 결국 1947년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넘겨 버립니다.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로 쪼개서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분할하자고 제안하는데요. 유대인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아랍인들은 거부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이 가진 땅은 전체 6프로였는데요. 분할하게 되면 유대인들은 56프로나 차지하게 되는 거라서 아랍인 입장에서는 너무 불평등한 제안이었죠. 유엔 투표로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땅으로 규정된 지역에서도 떠나지 않고 싸웠고 이스라엘은 아랍권의 반대에 맞서 텔아비브에서 건국을 선포하면서 쐐기를 박아버립니다. 1948년 마침내 팔레스틴 땅에서 이스라엘이 건국을 맞이한 것이죠. 이로써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아랍인 70만 명이 내어 쫓깁니다. 이스라엘 입장으로서는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거의 2천 년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우리의 고향땅을 되찾아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고 팔레스틴에 살던 아랍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2천 년 동안 살아온 삶에 터전을 빼앗겨 난민이 되어버린 대 재앙을 의미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입지는 거의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요. 이슬람교를 믿는 주변 국가들 속에서 이스라엘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건국 다음날 아랍국가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시작되고 이후 이들은 총 4차례의 전쟁을 치르는데요. 미국의 최신 무기를 등에 입은 이스라엘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승리를 이어 갑니다.
1980년에는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선포하고 대부분의 정부 기관도 예루살렘에 설치해 버리는데요.
UN안전 보장 이사회는 이 주장을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여 수도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각 나라에서는 예루살렘이 아닌 텔 아비브에 대사관을 둡니다. UN은 예루살렘의 특수하고 예민한 성격을 고려해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 특별 관리 지역으로 삼자는 결의를 내놓았죠. 한편 이스라엘 건국으로 난민이 되어 내쫓긴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조직해서 싸웠는데요.
1993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해방기구가 서로의 존재를 입증하는 (오슬로 협정)을 맺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유혈충돌 휴전협상, 암살, 자살테러의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2018년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미국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텔 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면서 또다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 천년만에 약속에 땅에 돌아왔던 이스라엘,, 삶의 터전을 빼앗겨버린 팔레스타인,, 이들의 뿌리 깊은 대립은 어디까지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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