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냥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불룩하니 불러있던 배가 얼마전부터 가라앉았고 3일동안 나타나지 않아서 한참이나 걱정했던 시간들을
재어보니 아마 그 암컷냥이와 수컷냥이의 새끼가 맞나 보았다 .
수컷냥이도 암컷냥이를 좋아하지만 암컷냥이가 수컷냥이를 더 좋아한다 .우리앞에서 애교를 떠는 암컷냥이를 보고 시샘을 하는지 암컷냥이의 뺨도 때려댄다,어느날 화단에 앉아 있던 수컷냥이는 밥주던 그릇 옆에 큰 나방 한마리를 물어다 놓았다
밥 주는게 고마워서 아줌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이 들어 고맙다고 했더니 알아듣는지 눈만 꿈뻑인다.
암컷냥이가 저녁이 되어 밥을 먹으로 오자 우리는 거실문을 열어 제치고 건강한 새끼냥이를 내보였다 ,
어미는 새끼를 알아보고 부르는 소리를 지르며 새끼냥이를 핥아준다.
따듯한 동태 삶은 국물을 먹고 난 어미 냥이는 새끼냥이를 다정하게 부르며 집으로 가자는 시늉을 한다 .
쇼파뒤에 몸을 반쯤 가린채 어미가 부르는 소리를 알면서도 가지 않겠다는 새끼냥이를 몇번인가 앞서 가다 뒤돌아 보고는 새끼냥이를
핥고는 무슨 말을 하는듯이 소리하고 앞서가고 하기를 몇번인가 반복하던 어미냥이는 따라가지 않겠다는 새끼냥이를 포기한 듯
그냥 두고는 사라진다 .!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연이어 새끼를 찾아오는 암컷냥이 또 다른 새끼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거두어 들일수는 없었지만 결국은 집에 들어와 새끼냥이를 품고 일년을 살다가 다시 나가게 되었다, 길냥이 생활은 안보다 밖이 더 편한가 보았다.
냥이들
혹독한 추운 겨울을 먹이를 찾아 담을 넘던 수컷냥이는 이마에 잔뜩 찢긴 상처를 안고 왼발을 들어 올린채 앉아 먹이를 먹고 가곤 했다
조그만 창고를 개방해서 사료와 물을 놔 두었지만 잠자리는 과연 어디다 둔 것인지 그 곳이 편하지 않았나 보다.
이마에 찟긴 상처와 추위에 시린발을 들어올리고는 주택가를 넘나 들던 수컷냥이는 그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나 보다.
자기의 영역이 있어서 쉽게 떠나지 않는 용감한 수컷 냥이는 어떤 죽음을 맞이 했을까 ,
외로운 길냥이들이어서 친구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 되었던 내게 이 암컷냥이는 수컷냥이가 죽은후로 항상 혼자가 되어 다닌다.
길냥이들도 깊은 잠을 자고 친구냥이가 있다는 것을 이 두마리의 길냥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혹독한 추위에 몸을 떨어야 했던 한나는(암컷냥이 새끼) 들어온지 얼마동안도 찬바람만 쐬면 추위가 아니라도 몸을 부르르 떨고는 했다.
홀로 울어대던 그 겨울 바람이 얼마나 무서웠나 ,털이 있는 고양이도 추위를 탄다는 것을 또한 한나를 통해 알게 되는 날들이었다.
어릴적 강아지를 길러 보았다던 남편은 암컷냥이의 새끼인 한나를 누구 보다도 예뻐한다 ,
호일을 또르르 말아주면 마치 공 놀이를 하듯 발을 구르며 뛰고 놀줄을 아는 고양이다.
철없던 청년의 시절 추운 겨울 먹이를 찾아 어두운 길거리나 차 바뀌 밑에서 부르르 털을 세우고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곤했었다!
그때마다 귀엽다는 말 한 마디로 일축하고는 배고픔과 추위로 점철이 되어있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길냥이들이라고
어떻게 생각이나 했을까.
어느날 벼락치듯 다가온 철저한 고립과 배신 세상에만 있는줄 알았던 교회에서의 왕따를 당해본 내게 밑바닥에서의 버림을 당하는
짐승의 삶을 생각하게 된것은 철저한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체험하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 축복의 시간 속에서도 축복인줄을 모르고 고통하며 아파하던 상처를 감사하기는 커녕 분노와 쓴 뿌리로 가득 채우며 화를 내던 내게
작은 길냥이 한 마리를 보내사 내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주님의 마음을 계시 하셨다.
지금은 가족처럼 되버린 11마리의 고양이들 ,너무나 순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우리집 옥상에서 옆집으로 떨어져서도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지 않고 한집을 건너 이웃한 한옥집 까스통 뒤에 고개를 쳐박고 웅크리고 있던 우리작은 수컷냥이 쉐마1
어느날 사람들을 위한다고 모기를 퇴치하는 크고 두려운 방역하는 소리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도 귀에 거슬리는 크고 작은 소리는 신경이 곤두서게 하고 급기야 싸움이 나고 칼부림까지 하고 만다.
하물며 작은 짐승들의 귀에 들리는 인간을 위한다는 경축의 폭죽 터지는 소리 ,쿵쾅대는 길거리의 즐거운 농악대의 소리들 ,모기 퇴치한다고
주일마다 한번씩 갈아대는 우람한 방역소리엔 짐승들과 아기냥이들을 얼마나 많이 놀라고 산산히 흩어지게 하고 말겠는가.
자주 들여다 보는 동물 보호소엔 어린냥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의 모습들이 방역하는 여름이면 더 더욱 들어차 보인다,
해년마다 여름이면 내 마음을 내려치는 방역소리 ,잃어버린 쉐-마1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오고 우울해진다
짐승이라도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추위와 배고픔, 집에서만 살다간 쉐마의 고통은 바깥 세상의 야속함 때문에도 한시도 놓을수없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정이 들면 무서운가 보다 ,
아니 정 때문이라기 보다도 쉐마가 느꼈을 고통이나 두려움을 생각하니 더 힘이 든게 사실이다 .
쉐마를 잃어 버렸다는 소리에 좋게 생각하라는 수의사분의 말이 있었지만 ,그건 옳은 말이 아니다.
왜냐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수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왜면한 채 그냥 좋게 생각하며 넘어 가라고들 말을 한다.그런데 그렇게 할수 있는 건가
그건 자기 좋자고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이자 무관심의 이기적인 속성이라고 생각이 든다.
진짜 중요한건 진실을 아는 것이다, 나는 쉐마가 지금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
차라리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만이라도 알았으면 마음을 놓을수가 있을것 같다.
자녀를 잃어버리고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여전히 고통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
이런 내게는 소중한 쉐마를 잃어 버리고 난후 혹시나 보호소에 들어가 있을까를 염려 하던중에
연이 되어 동물 보호소에서 데리고 온 두 마리의 암컷 냥이들을 비롯해 11마리가 나의 가족처럼 되어 있다,
길냥이를 보고 맘껏 한번 만져 보고 싶다는 바램이 넘쳐서 이제는 넘치도록 만져보고 안아보고 있는 우리집 냥이들, 성격이 너무 깔끔해서
고양이들을 데리고 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었다 .
11냥이라는 가족으로 불어나자 날마다 날리는 털 때문에도 오손도손 단 둘이만 살아가는 남편과의 여유도 많이 사라지고 악을쓰고 싶을만큼 어수선하고 부산한 분위기에 지쳐서 불평도 많이 했던 나와 남편에게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친구같은 가족으로 자리메김하고 있는 우리집 냥이들 내겐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가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