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겨 맞는 길냥이
일요일 아침 일찍 나는 화단에 물을 준다.
건네 편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며 강아지를 안고 서 계신다.
요 앞 도로가에 있는 목욕탕 주인이 새끼 7마리를 낳은 암컷 고양이를 심히 때렸다는 것이다.
강아지와 길을 지나가시다가 통곡하며 울고 있는 미용실 아줌마를 보고 자초지종을 들은 것이다.
미용실 아주머니는 길냥이 암컷 한마리를 만나서 밥을 주며 사랑으로 돌보고 있었는데 옆에 사시는 목욕탕 주인분이 고양이가
주변을 더럽게 한다며 발기질을 하고 심하게 두들겨 팼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심히 놀라고 마음이 상해서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심하게 두들겨 맞은 암컷 고양이는 여전히 목욕탕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는 것인데
이런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하다고 내게 말하신다.
옥상 난간에 옹기종기 앉아 멀리 고물상 앞 작은 도로가까지 바라다보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는 사람들의 반응은
자연 고양이 키우는 우리 집이다 , 그러니 고양이 문제는 마땅히 우리의 것이 된 게 사실이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그보다 더 특유의 내 성깔이 발동이 되었다.
아줌마는 내 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는 듯 아예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신다.
나는 주변 동네 분들 다 들어라고 분노를 한 아름 머금은 채 일요일 아침 외쳐대듯 말하였다...!
11마리의 고양이를 품고 있는 나는 자연 동네분들에게 고운 시선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밥 동냥하러 오는 길냥이들에게 까지
작은 창고를 열어 개방을 하고 있으니 어찌 고운 시선이 내게 머믈겠는가.
참 사람은 이상하다...!
좌우 탁 트인 깊숙한 골목에 다닥다닥 낡고 오래된 집들이 붙어 있어 아래를 내려다며 이야기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이 사진들은 두들겨 맞는 길냥이 사진이 아니다.
참고로 우리 집 제 새끼가 아닌데도 길냥이 새끼 품는 밀가와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 사진들이다.
밀가는 동물보호소 출신에 길냥이 출신 냥이다.
사나워서 동물 보호소 철장 케이 지안에 갇혀 있어 온갖 병을 달고 빼빼 말라 입양도 안 되었던 밀가
새끼를 잃어버린 까닭일까, 제 새끼가 아닌데도 비바람에 홀로 남은 길냥이 새끼를 저리도 품는다.
이제 아주 어린 암컷 길냥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길냥이들의 보편적인 습성은 먹이를 먹을 때 뒤돌아보는 습성이 있다.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놀라고 아직은 어린 새끼 냥이라서 많이 불안한가 보다.
새끼 주려고 먹이를 물고 가는 암컷 길냥이
요, 암컷 냥이는 담 너머 꼬박 세 번 정도를 왔다 갔다 한다.
제 새끼를 주려고 먹이를 물고 다녀가는 것이다.
다 물어다 준 후에는 조금 남은 나머지 부분을 먹는다..
지금은 수술한 허리를 걱정해 주시며 인사말을 나누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 고양이는 먹는 것이여..라고 하시며
키우지 말라며 옥상에서 할머니 집으로 가끔 떨어질 때도 있었던 고양이를 걱정해 주시기도 하셨던 작은 한옥집에 사시는
80이 넘으신 할머니... 그 할머니의 딸 또한 나이가 50이 넘은 아주머니다,
그 아주머니는 화단에 싼 길냥이의 대변을 고이 싸듯 받쳐 들고 너희 집 고양이의 똥이라고 우리 집 대문 앞에 가져다 놓았었다.
명절날이면 유독 더 소리를 높여 다 들어라는 듯 내 안방에 대고 저주를 퍼붓는 60이 넘으신 이웃집 아주머니도 있다.
내가 독약이라도 놔서 이놈의 고양이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어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 집을 넘나 들며 밥을 먹으러 오는 길냥이들을 보며 우리 집 고양이들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참 이상하다. 고양이들을 왜 그렇게 싫어들 하시나..!
우리 집 정면 이층에는 길냥이 밥을 주고 있는 남편과 나를 보고 밥을 주면 자주 오게 되니까,
밥을 줘선 안된다는 세탁소를 하셨던 아저씨가 살고 계신다, 제사를 지내는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양이가 제사상에 올라 조상에게 올린 음식을 먹자 잡아서 때려죽였다는 얘기를 남편에게 하신다...!
나이가 90이 넘으셔도 허름한 집에서 고물을 주우시며 생활하시는... 남편과 내가 명명한 고물상 할머니가 계신다.
홀로 외롭고 생활이 여의치 않으시기에 이것저것 챙겨서 보내드리고 집에서 나오는 폐지나 고물은 당연 할머니 차지다.
그 할머니 또한 고양이를 예쁘게 봐주시며 드시다 남은 생선 쪼가리나 기타 여분의 음식물들을 길냥이들에게 놔주시며
돌보시고 계시지만 주변의 시선은 역시니 곱지 않다...!
저런 방정맞을 ,.. 훈계를 하시며 잘못하는 젊은 세대를 향해 채찍질 하는 어른의 권위는 온 데 간데없고...
이미 할머니보다 훨씬 더 어린 세대들이 길냥이들 밥 주지 말라며 얄미운 눈초리를 들어 책망 아닌 책망을 할머니에게 한다.
허리를 수술하고 난 뒤 아직 걸음이 편치 않아 남편을 의지한 채 걸어오는 내게 아직 나는 늙었지만 젊은 사람이 그게 뭐냐며.
아들이 치과의사여서 돈은 많이 벌지만 잘하기는 개뿔이라며
혀를 차시는 아주머니도 90이 넘은 고물상 할머니에 비하면 아직 한참 어리시다.
힘없고 연약한 까닭에 젊은 동네 아줌마에게 책망을 듣고도 말을 못 하고 길고양이가 똥을 싸니까 , 키우지 말라고 해서 우리 집 아래층 담벼락 밑에 가져다 던져 놓은 할머니가 키우시다 만 아이스박스 화분들...!
나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젊은 부랑아 친구들의 교도를 듣고 고통하는 이스라엘의 짐을 두배나 짐 주다 망해갔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을 이 세대들에게서 본다.
죄가 관영하면 주관자가 많아진다고 성경은 말한다, 진정한 권위가 뭔지도 모르는 이 세대...
너도 나도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겉으로 보이기에 자유로워 보이는 이 세상 , 민주주의란 것이 반듯이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칼은 사용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에게는 유용한 것이 되지만 성숙치 못한 어린아이에게는 흉기가 되고 만다.
오늘날 진정한 장로의 권위와 노인의 권위는 다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오늘날 이 세대는 흰머리 앞에서 고개 숙이고 센머리 앞에서 일어서라는 성경의 권위 있는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웃집 일층 옥상에서 뛰어내리기에 좋은 고양이용 의자와
주변 골목 구석에 고물 줍는 할머니가 가져다 놓은 두 개의 작은 아이스 박스 화분과 한 개의 큰 고무화분.
나는 그러 저러한 얼마간의 불만을 표출이라도 하듯이 이른 아침 좌우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낡은 건물들을 의식하면서
주변 분들이 다 들어라는 듯 큰 소리로 외쳐 댔다.
(한집에는 아빠와 엄마가 있고 아이들과 귀여운 생축들이 존재한다.)
그래요 , 어째서 고양이를 발로 찬답니까, 그것도 그 어린 새끼 품은 암컷을... 그 미용실 아줌마 통곡하는 거 이해가 갑니다.
사람은 똥 안 싸고 소리 안 지른 답니까, 제 자식들 소리 지르고 똥 싸는 것은 괜찮고 고양이들 똥 싸고 소리 지르면 안 된다는 법 어디 있나요.
세계적으로 고양이 학대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이나라 이민족입니다.
그리고 거 화단에 똥 좀 싸면 어쩐다고 그런답니까, 옛날에는 똥 퍼다가 다 밭에 거름 주고 그랬습니다,
똥 싼다고 뭐라 그만하고 화단에 묻어주면 거름 되고 좋을 것을...!
사람이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하다고 더러운 것 찾고 해요, 환경을 깨끗하게 한다고 애꿎은 생명체들 다 죽이고요.
우리 집 이층에서 내려다 본 이웃집 옥상과 고양이가 다니는 그 주변 골목들..
우리집 주변 골목
“심지어 왕도 밭의 소산을 먹느니라, 는 성경의 말씀이 있다.
나는 어렸을 적 항아리를 집 삼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넘쳐나는 똥을 긴 장대를 멘 바가지를 이용해 똥통에 담아 똥지게를 지고
뒷밭에 심은 여러 채소전에 고랑을 파고 한 바가지씩 퍼다 부우시고 흙을 덥어 채소를 기르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해봤다.
수확철이면 많은 수확은 아니라도 어찌나 옹골차고 맛도 좋던지..
가공식품에 물들고 농약이 주를 이루며 유전자 조작 식품이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선 찾아보기 힘든 맛이다.
도배를 하려고 방바닥을 들어보면 기생하는 작은 생물들이 기어 다닌다,
화단을 가꾸다 봐도 시골에서 가져온 흙속에 집을 지은 많은 생물체들을 볼 수 있다. 어렸을 적 밭에서 감자를 캐다 보면
사내 기도 나오고 굼벵이도 스멀거린다, 지렁이 개미 또한 우리에게 주신 양질의 비료가 아니던가 ,
이것들이 누운 똥이나 죽은 사체는 화단이나 밭의 좋은 천연의 유기 비료가 되는 것이다,
평소 말이 없던 내가 이른 아침부터 거침없이 내뱉은 말을 듣고는 아무 말들이 없으시다,
조용히 나오셔서 눈인사만 하시고 출타하시는 아주머니와 달리 고양이를 싫어하시는 세탁소 아저씨는 못내 서운한 듯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신다, 뒷등에 흐르는 기운은 땅을 뺏기고 고통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뒷모습을 닮은 듯하다.
주변의 눈치를 잔뜩 보시는 아주머니는 내 큰 소리가 부담스럽다는 듯 얼른 들어가시고 싶어 하신다.
나는 몇 마디로 인사를 건네고는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오 하나님 내가 오늘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고양이를 두들겨 팼다는 목욕탕 주인의 행위나 , 분노를 가득 품은 반감 속에서 그동안 쌓인 분노를 복수라도 하려는 듯 외쳐되는 나의 행위는
다를 것이 뭔가요 , 동일한 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은 악을 내어 쫒을 수 없다.
어쨌든 이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악한 방법이었다.
나는 작은 삽을 들어 길거리에 누운 유기동물들의 똥을 치우며 주님의 말씀을 상기해 보았다.
아버지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그래 인간은 다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나는 주님 앞에 탄식하며 엎드려 무릎을 꿇어 나의 죄를 회개했다.
하나님 나를 용서하소서, 더불어 야고보서의 말씀이 내 마음을 때린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장 14~18)